이 글은 4.19 당시에 출간된 수기류들을 분석하여 4.19 이야기의 작용과 효과를 살피려는 것이다. 4.19 이야기를 하고(쓰고) 들은(읽은) 사람들은 그들이 나눈 사건의 정황과 줄거리, 그리고 그를 통해 새롭게 환기되었던 국면들 안에 자신들을 위치시켰다. 4.19 이야기가 쓰인 과정은 그들의 의거가 혁명이 되는 과정-혁명적 시민대중이라는 주체가 상상된-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의 전개와 그 성과는 이야기를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입장이다.
4.19는 불의의 폭력에 맞서 정의를 세우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이야기로 씌었다. 희생자를 대신하는 애도의 이야기는 국가에의 헌신을 요구했고 더불어 혁명은 국가를 위한 혁명이 된다. 국가의 발전이 혁명의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국가가 혁명(혹은 비상시)을 요구하면서 국가의 상징적 전체성은 문제시되지 못했다.
4.19 이야기에서 '우리'의 형상은 폭정을 혐오하며 주권을 확보하려는 '의로운' 우리로 묘사되었다. 시위에 앞장선 순수한 청년학생들은 이를 대표했으나 '우리'를 구성하는 구심적 협상은 모호한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 만큼 모호한 이야기 정체성의 밖은 조명되지 않았다. 4.19 이야기는 개혁을 주도할 주체를 요청했으나 이를 구체화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야기 정체성의 헤게모니는 이데올로기적 기구로 작용했다.
4.19를 통해 목표가 된 민주주의는 국가발전의 기획으로 제시되었다. 국가의 '도덕적' 번영에 대한 기대가 4.19의 한 귀결이었다고 할 때 누대의 빈곤을 물리치고 '민족중흥'을 이룰 청렴하고 강직한 국가지도자의 등장은 고대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스스로 혁명을 완수할 주체를 참칭한 5.16 군사쿠데타 세력의 정치적 등장은 4.19 이야기의 헤게모니에 편승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