汝州 張公巷窯는 금세기에 접어든 후 연구자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끌어온 窯場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아직 장공항요의 年代와 性格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장공항요지의 출토유물을 宋·金·元代의 요지, 窖藏 및 무덤 등에서 출토된 다른 요장의 瓷器 및 銀器 등과 비교·검토하여 장공항요의 연대와 성격을 추적하였는데,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장공항요지의 발굴보고자에 따르면, 이 요지에서 장공항요와 관련된 유물이 가장 다양하고 많은 유물이 출토된 T4의 경우, 모두 10개의 퇴적층이 확인되었는데, 이 가운데 장공항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은 4~6층이다. 제6층이 장공항요지의 가장 이른 시기에 형성된 것이고 제4층이 가장 늦은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특히 제6층을 파서 만든 H101은 장공항요 초기의 청자표본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장공항요의 설립시기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H101에서는 장공항요의 후기 층위에서는 출토되지 않는 여러 기종이 출토되었는데, 敞口折沿碗·葵口板沿盤·紙槌甁·鵝頸甁·별口圓壺 등이 그것들이다. 이 기종들의 기형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四川彭州宋金銀器窖藏 출토 銀器들과 가장 흡사하다. 이 銀器들은 1180~1210년경에 제작되었으므로, 장공항요는 金代後期에 설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窯址의 가장 늦은 시기의 퇴적층인 제4층과 H88 등에서 출토된 기종들의 조형적 특징을 통하여 볼 때, 장공항요는 金의 멸망과 함께 소멸된 것으로 판단된다.
장공항요에서 생산한 청자는 汝窯瓷器에 버금갈 정도로 품질이 높다. 그리고 품질이 일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 殘次品은 모두 깨뜨려버렸다. 이러한 현상들은 당시 어용자기를 생산하던 요장에서 흔히 관찰된다. 이 시기에 어용자기를 생산한 대표적인 요장으로 북송의 여요와 남송관요를 꼽을 수 있는데, 장공항요의 설립과정 및 어용자기의 제작양상은 여요보다는 남송관요와 훨씬 더 유사하다. 이상의 검토를 통하여 볼 때, 장공항요는 금대 후기에 설립된 金代官窯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