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에서 삼국시대 초기에 이르는 시기 중국 창강 하류지역과 한반도 남부지역 간의 교류양상과 원인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신석기시기에는 해수면의 상승과 조선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창강하류와 한반도의 교류는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일부 유물이 발견되나 이는 단발성 교류 또는 해수면이 높지 않은 시기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이후 창강하류 지역 유물들이 한반도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중국 내 혼란과 관련이 있다. 중국의 창강하류 지역은 도작 중심의 농경민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이들은 토지에 대한 부착성이 강하기 때문에 쉽게 원거주지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당시 해상들의 활동이 활발한 시기도 아니기 때문에 기원전 4세기 이후 산발적으로 소규모로 진행된 교류는 그 원인을 중국 사회 내부의 혼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3세기 이후 북방의 혼란으로 인하여 황해남부사단항로가 개척되었고 탈해집단은 이 항로를 이용하여 신라로 이주할 수 있었다. 황해남부사단항로를 통하여 한반도 남부와 중국 창강하류 지역은 활발한 교류를 시작하였는데 대표적인 유물로는 토우장식 장경호를 들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이후 해상교류가 시작되는데 이 시기에는 주로 황해중부항로를 통한 간접교류 방식이 이용되었으며 3세기 이후에는 황해남부사단항로가 개척됨으로 인하여 직접교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