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가 끝나갈 무렵 멕시코는 카스트 전쟁, 에네껜 산업의 팽창, 그리고 뽀르피리오 정권을 겪으며 사회 전반에 걸쳐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에 더불어 위의 사건들이 당시의 이민 정책과 맞물려 동아시아 이민이 증가했고 이는 특별히 유까딴 주의 인종-계급 역학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민 초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인들은 멕시코에서의 장기 거주를 통해 새로운 사회계급을 형성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들을 기존의 사회역학관계에 위치하는 것에 어려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주목할 것은 멕시코가 해외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동아시아인들을 반겼을지 모르나 그들은 궁극적으로 메스띠사헤 담론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위의 동아시아 이민자들 중에는 1905년 5월 15일에 유까딴 주 메리다에 도착하여 에네껜 농장에서 일하게 된 1,033명의 계약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멕시코의 모순적 태도와 더불어 당시 인종-계급 역학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경우로 주목할 만 하다. 동아시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한국 정부에 의해 잊힌,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경제적 가치와 적은 인구수로 인해 멕시코 정부의 무관심에 묻힌 한인 이민자들은 확실히 국가적, 문화적 정체성의 면에서 멕시코에서 자리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즉, 물리적 개인들로서는 불가피하게 멕시코 사회에 혼합되었을지 모르나 한인이라는 민족성에 있어서는 메히까니다드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지 못한 것이다. 본 논문은 1904년에서 1909년 까지의 한-일-멕 정부 서신들과 유까딴 반도 내 신문 기사들(의 부재)를 조사함으로써 멕시코 정부와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한인 이민의 의의를 재해석한다. 한인 이민자들의 삶을 노예 생활로, 한인 이민사를 한국만의 역사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짙은 한국 아카데미아의 관점과는 달리 한인 이민과 정착 과정을 멕시코 역사의 맥락에서 바라본다. 그런 과정에서 멕시코 정부와 유까딴 농장 소유푸들이 한인 이민자들에 관련하여 어떤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지는지를 짚어내고, 어떻게 둘의 불균형이 멕시코가 한인 개개인의 신체를 수동적이게나마 생물학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한인 정체성을 수동적으로 배제하는 지를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