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매혹된 것을 장악하려는 욕망을 표현한다. 국내여행과 국외여행을 구별하면, 전자는 '익숙한 공간'에서 후자는 '낯선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본고에서는 식민지 조선인의 세계여행에 주목했는데, 이러한 여행은 식민지 모국인 일본을 경유하지 않고 서양과 직면함을 의미한다.
당대 세계를 '일주'하는 여행과 여행기를 남긴 경우는 허헌, 나혜석, 이순탁, 박인덕 이상 4명의 사례가 유일하다. 이들은 1920~30년대 세계여행을 통해 식민지 조선인 독자에게 세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민족적 현실과 개인의 삶을 연동시켰다.
이들의 세계여행기는 '익숙한' 국내 여행과 달리 '낯선 것' 사이의 경계를 없애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들은 개인이면서 조선 민족을 대변하는 존재로, 나아가 '동양인'과 '근대인'이란 경계를 넘나들었다. 다시 말해 세계여행 과정에서 이들은 식민지 조선인이자 동양인이면서 동시에 근대 세계의 일원이라는 상호 교차하는 정체성의 동요와 혼란을 경험했다. 이를 '경계 넘기', '조우' 그리고 '귀환'의 측면에서 검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