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제두(1649-1736)의 질문과 송시열(1607-1689)의 답변을 중심으로, 이들의 철학사상을 비교하는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정제두는 서인 명문가의 자제로 송시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는 남언경, 최명길등의 심학적 사고를 양명학적 사고를 통하여 이론적 사고의 정점을 찍고 있다. 그가 양명학적 사고를 처음부터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는 내면적으로 마음의 사려분요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마음의 본체를 통해서 확립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을 확증할 방법이 없어 당시 학계의 최고봉인 송시열에게 질문을 한다. 직접적인 자신의 절박한 문제를 기술하기 보다는 유가 경전이나 주희의 저작등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장양의 본심, 이혼한 여자의 상복과 개가, 사적인 생각과 공적인 생각, 사려분요, 독서와 일등의 차례로 질문을 한다. 본체의 마음과 그것의 현실적 적용, 그리고 그것을 이르기 위한 공부방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제두는 아직 양명학적인 개념이나 학문체계를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속에는 충분히 양명학으로 발전될 수 있는 단서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정제두는 양명학을 묵수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적인 고민 속에서 해석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송시열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쉽게 주자학적인 답변을 하고 만다. 주자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제두의 실존적인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좀 더 논쟁을 지속하지 못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작업은 박세채와 민언휘에 의해서 좀 더 치열하게 전개된다. 송시열의 과제가 이들에게 맡겨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