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선시대의 강화(江華)에서 실시된 네 차례의 강화별시(江華別試)와 한 차례의 강화별시재(江華別試才)에 관한 연구이다. 강화별시는 강화에서 실시한 시험만으로 최종 급제를 주었고, 강화별시재에서는 급제가 아니라 직부전시(直赴殿試) 자격이 주어졌다. 강화별시재 합격자들은 다른 시험을 통해 급제를 받았다. 한편 이 시험들처럼 외방에서 실시하는 문과를 외방별시 혹은 외방별시재라고 불렀다.
강화별시나 강화별시재는 모두 강화에 거주하는 유생(儒生)들을 위무하고 또 위열(慰悅)한다는 목적에서 마련되었다. 따라서 이들 시험에는 오직 강화나 혹은 그 인근 지역인 교동, 통진, 김포 등지에 거주하는 자들만이 응시할 수가 있었다. 그래야만이 시험을 마련하게 된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네 차례의 강화별시와 한 차례의 강화별시를 통해 급제를 받은 인원은 23명이었다. 조선시대 전체 문과 급제인원 14,600여 명 중 0.16%에 해당되는 적은 수였다. 하지만 비록 적은 수였지만 급제자를 선발할 때면 반드시 지역을 안배하였다. 그래야만 유생들의 마음을 고르게 달래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