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강화군 전등사 명부전에 봉안된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제작한 수연(守衍)비구에 관한 연구이다. 이 보살상은 2010년 10월에 사찰의 의뢰를 받아 명부전 내 봉안된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의 복장 조사를 계기를 통하여 조성발원문을 비롯한 복장물이 조사되었다. 조성발원문에는 제작시기와 조각승 등이 적혀 있어 조선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발원문에 의하면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은 1636년 수연(守衍)과 탄오(坦悟)가 증명(證明)을 맡고, 수연과 영철 등이 제작하였다. 이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제작한 수연은 1619년에 서천 봉서사 불상을 수화승으로 제작하면서 증명의 소임을 맡았다. 따라서 1610년대 후반에 수연은 상당한 지위와 학식을 겸비한 스님으로 보인다. 그는 1623년에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좌상을, 1625년에 나주 쌍계사 목조삼존불좌상과 소조나한상(나주 다보사 봉안)을, 1634년에 옥구 보천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익산 숭림사 명부전 봉안)을, 1636년에 전등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을, 1639년에 남원 풍국사 목조삼세불좌상(예산 수덕사 대웅전 봉안)을 조성하여 이제까지 밝혀진 활동 시기가 1615년부터 1639년까지이다.
목조지장보살좌상은 높이 107센티미터 되는 중형보살상으로, 민머리의 성문비구형(聲聞比丘形)이다. 지장보살은 상체를 앞으로 약간 내밀고, 불신(佛身)과 따로 제작된 양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수인은 조선후기 제작된 석가불(釋迦佛)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래와 보살 등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다.
보살은 각이 진 얼굴에 가늘게 뜬 눈, 원통형의 코, 미소를 머금은 입을 가지고 있다. 착의법은 두꺼운 대의 안쪽에 편삼(扁衫)을 입고, 대의자락의 한 가닥을 들어 올린 손목 뒤에 비스듬히 걸치고,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며,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대의 자락이 길게 늘어져 있다. 하반신을 덮은 옷자락이 완만하게 흘러 내려 표현된 것은 17세기 전반부터 나타나는 대의처리이다. 대의 안쪽에 가슴을 가린 승각기(僧脚崎)는 수평으로 묶어 상단에 연판형의 주름이 접혀있다.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좌상는 1634년에 제작된 익산 숭림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인상이나 착의법이 거의 유사하다.
이번 연구를 통하여 조각승 수연과 그 계보는 태전(~1600경~1615~)→수연(~1615~1639~)→성옥(~1619~1625~), 운혜(~1649~1680~), 경림(~1665~1680~) 등으로 이어진다. 또한 수연과 그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 불상을 만든 지역은 강화 전등사, 배천 강서사, 서천 봉서사, 김제 금산사, 옥구 보천사, 남원 풍국사, 나주 쌍계사, 해남 서동사, 장성 백양사 약사암, 곡성 도림사, 화순 쌍봉사, 순천 동화사, 고흥 능가사로 서해안을 따라 이동이 가능한 곳이라 이들이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연과 그 계보 조각승이 제작한 불상 양식을 바탕으로 전국 사찰 전각에 봉안된 무기년명(無紀年銘) 불상 가운데 전남 강진 백련사과 해남 미황사에 봉안된 목조지장보살상은 1660년대 초반 조각승 운혜가 제작한 작품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