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은 주자학(程朱學, 性理學)이라는 대척적 존재를 짝으로 갖는다. 그 짝과의 관계는 주자학= 중세, 실학= 반중세(反中世, 혹은 脫中世)라는 상상된 등식이다. 곧 주자학의 비판적 담론 곧 실학은 탈중세이며, 그것은 결국 근대를 향하는 담론이라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상상된 것일 뿐이다. 실학의 완성자라고 평가되는 다산 정약용학문의 가장 높은 성과인 경학(經學)은 결코 주자학을 비판하거나 주자학을 대척적인 존재로 설정하지 않았다. 다산은『매씨서평』에서 주자를 비판한 모기령을 다시 비판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주자학을 옹호하였다. 만약 다산이 주자학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면 평생 주자 비판을 목적으로 삼았던 모기령의 경학에 찬동해야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산의학문은 그 반대였다. 다산학은 주자학의 대척적 지점에서 성립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다산학을 실학이라 한다면, 실학은 주자학의 대척적 타자일 수 없다. 주자학과 실학의 대립이란,‘내재적 근대’를 서술하기 위해 20세기 민족주의 역사학이 고안한 장치일 뿐이다. 실학을 근거로 내재적 근대를 계속 주장한다면, 한국사 서술은 서구사(西歐史)의 시대구분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서구 중심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 역사 서술이야말로 민족을 주어로 삼는 민족주의 역사관을 근저에서부터 배반하는 것이다. 실학은 사회모순과 체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족 체제의 ‘자기 조정 과정’에서 제출된 담론이다. 그것은 보다 완벽한 사족 체제의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성리학이 만들어낸 정치제도, 사회제도, 친족제도, 그리고 윤리에 대한 부정과 비판은 없다. ‘실학’이란 명사를 만약 버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족 체제의 자기 조정 과정에서 제출된 개혁 담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산의 저작들은 바로 그에 가장 잘 부응했던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