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종 3년(1866)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경시되어온 당시 박규수의 활동을 재평가하고자 했다. 셔먼호 사건이 발생한 현지의 최고 책임자로서 박규수가 비밀 협상까지 시도하면서 이 사건을 가급적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한 사실을 밝히고, 그가 이처럼 평화적 해결을 지향했던 현실적인 이유는 해국도지를 통해 서양 군사력의 우위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평화적 해결 노력이 무산되자 마침내 셔먼호를 섬멸하기로 하고 火攻策을 감행한 것도, 대원군의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박규수 자신의 단독 결정에 의한 것임을 논하였다. 이와 아울러, 셔먼호 사건을 계기로 박규수가 개화사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는 일각의 주장과 달리, 이 사건으로 인해 그가 대원군으로부터 더욱 두터운 신임을 받았을뿐더러 대원군의 배외정책에 호응하여 東津鎭 건설 등 군사력 강화에 힘쓴 사실을 지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