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판소리 사설과 탈춤대본에 천자뒤풀이에 이어 등장하기도 하는데, ‘언문’을 통해 독서생활을 하던 문화적 자양분이 그 형성의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동시에 1900년대를 전후로 한 초등교육에서 활용된 국문표가 이 노래의 형성과 수용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2년 기록된 천주교가사 등에 이 노래의 형식이 원용된 것은 이미 그 이전에 노래가 형성되었다는 근거가 된다.
1930년대에는 경서도 잡가의 가창자들에 의해 유성기음반으로 취입되어 유통되었다. 이들에 의해 유통된 노래 가사는 이별의 상황에서 임을 원망하기도 하고 탄식하기도 하는 애상성을 띠고 있다. 현재 전하는 민요자료의 약 절반 정도는 유성기음반 자료로 전하는 잡가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민요자료에는 노동의 애달픔이나 민족감정을 담은 현실적인 내용이 담기기도 하여 잡가의 애상성과는 다른 현실성을 보여준다. 이 노래의 형식상 가사와 친연성을 지니는데, 가단에서 하단까지를 두운으로 하여 창작된 154행의 장편가사에는 규중여자의 도리를 강조하거나 역사적 지식을 과장하는 등 고답적인 내용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국문뒤풀이>는 잡가민요가사 형식으로 지난 1세기 동안 전승된 노래로서 우리 노래문학 작시법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단순한 악곡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is a song which was combined with series of Korean syllables. Researchers of the Korean songs recognized this sons as Kyungki province Vulgar songs[雜歌], but not spread out widely. But This song accepted at diverse areas.-Vulgar songs, Folksongs and Kasa. And it has an unique character in the art of verse making in Korean so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