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6세기 소설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기 위해 사대부들의 일상생활과 일상에 나타난 그들의 의식세계에 주목하여 사대부들의 신이기호적 일상이 소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해명한 것이다. 그간 사대부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습적 이해는 경직된 주자주의자의 면모 정도였다. 특히 사화를 겪으며 정치와 문화의 주도권을 잡은 16세기 이래 사림의 이미지가 그러하다. 그러나 16세기의 사대부들의 일기는 그들 역시 자신들이 내세운 이념과는 달리 신이문화에 여전히 한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6세기 사림들은 유가적 이념을 내세워 헤게모니를 잡았지만 이념의 전선에서 물러난 일상의 현장에서는 하층 민중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을 치고, 굿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문건의 『묵재일기』와 유희춘의 『미암일기』는 그것을 증언해주는 좋은 자료이다. 이런 일상적 신이문화는 16세기 초 채수의 ?설공찬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소설 창작의 자료로 원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창작과 유통을 추동하는 유력한 문화적 토양이 된다. 이 같은 문화적 조건과 소설의 상관관계를 좀 더 확장해 나가면 『묵재일기』나 『미암일기』에 나타난 신이기호적 일상은 당대의 다른 작가들에 의해 창작된 전기나 몽유록의 문화적 토양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추론에 이를 수 있다. 이들 일기에 보이는 점복담·치병굿과 전기, 또는 해몽담과 몽유록의 서술형식이 대단히 유사하고, 서술형식의 배후에 드리워져 있는 탈유가적 인식론이 동질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사성과 동질성이야말로 당대의 소설부정론을 넘어 소설이 확산될 수 있었던 문화적 조건이었다.To explain a history of fic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I take notice of daily life and consciousness of the gentry(士大夫) in this paper. I think our understanding about their consciousness was such a degree of rigid confucianist's features. But the gentry's diary written in the sixteenth century, when confucianist took the leadership in culture and politics through a massacre of scholars, tells us a different story. They were dipping their one foot in shamanistic culture unlike their ideology. That was not different from a people's daily life of the day. Their daily life with shamanism had a deep relationship with creation of Chuanqi(傳奇), Mongyurok(夢遊錄). I think that this paper explaining their relationship will be a significant opening up a new field in researches of a history of fiction of in the 16th century. And also it will apply to examine a history of fiction of other period closely hereaf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