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 이래 근대일본은 ‘제국’을 표방하며 국가의 전략목표로서 끊임없는 팽창을 추구했다. 그리고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수행했던 일련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임시군사비는 이러한 전쟁을 위해 지출된 막대한 규모의 군사비이다. 일반회계의 군사비와는 별도로 특별회계였던 임시군사비는 공채모집을 통해 전쟁비용의 조달을 용이하게 해주었고 일단 예산을 확보해두면 상당한 재량권으로 쓸 수 있다는 ‘효율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임시군사비는 근대일본의 주요한 전쟁 즉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과 시베리아 출병,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이렇게 4차례에 걸쳐서 성립, 운용되었고 전쟁비용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그러나 임시군사비는 예산통제라는 면에서 커다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임시군사비는 제국의회의 심사에서 기밀상의 이유로 예산의 내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고 회계검사도 제한되었다. 또한 임시군사비는‘사건의 종결까지’를 하나의 회계연도로 했기 때문에 전쟁과 전후처리가 끝날 때까지 장기간 유지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임시군사비를 통제되지 않는 군사비로 만들었다. 통제되지 않은 군사비인 임시군사비는 모험적이고 즉흥적인 군사행동을 용이하게 했으며 심지어 전쟁 자체를 촉진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쟁 속에서 임시군사비는 입헌적예산제도 자체를 손상시키기까지 했다. 네 차례의 전쟁을 거치는 동안 그러한 폐해는 점점 심화되었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때 절정에 달했다. 그 후 태평양전쟁의 패배로 인해 ‘제국’이 붕괴되고 육해군이 폐지되고 나서야 임시군사비도 완전히 폐지되었다. 결국 통제되지 않는 군사비라는 측면에서 임시군사비는, 군수를 위한 민수의 희생, 전쟁의 장기화와 확대를 초래하는 요인이 되었고 종국에는 근대일본의 입헌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明治期以降, 近代日本は「帝国」として膨張を目指し, 領土を拡大してきた。 これは日本が東アジアで行った一連の戦争とつながり, 臨時軍事費はこのような戦争のために支出された軍事費であった。 臨時軍事費は一般会計とは別の特別会計であった。 そこで臨時軍事費は, 公債の募集を通して多額の戦費調達を容易にし, 一旦, 予算を獲得すれば, 強い裁量権をもって使えることができるものであった。 このような‘効率性’のため臨時軍事費は, 近代日本の主要戦争, すなわち, 日清戦争, 日露戦争, 第1 次世界大戦とシベリア出兵, 日中戦争と太平洋戦争の時に成立し, 運用された。しかし, 臨時軍事費は予算統制という点で大きな問題点を孕んでいた。 臨時軍事費は機密を理由に帝国議会で予算の内容がほとんど公開されず, 会計検査も制限された。 また,‘事件の終結’までを一会計年度としたので, 長く続いたのである。 そこで, 臨時軍事費は次第に予算統制から外れていった。 統制から外れた軍事費である臨時軍事費は, 無謀な軍事介入を容易にしており, ひいては, 開戦にも影響を与えた。 また臨時軍事費は, 戦争の中で, 立憲的予算制度を崩すまでに至った。 4回の戦争の間, 臨時軍事費の問題点はますます大きくなり, 日中戦争と太平洋戦争の時に絶頂に達したのである。 その後, 敗戦によって「帝国」は崩壊し, 陸海軍は廃止されたのち, 臨時軍事費も完全に廃止された。 結局, 予算統制という側面で臨時軍事費は, 軍需のための民需の犠牲, 戦争の長期化と拡大をもたらす要因になり, ひいては, 近代日本の立憲政治の崩壊にも影響を及ぼしたと言え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