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한국미술의 담론 속에는 “현대문명”, “도시문명”, “산업문명”, “일상생활”, “기계문명”, “도시세계”, “소비문명” 등과 같은 새로운 용어들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 다양한 어휘들의 등장은 그것들이 지칭하고자하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성격이 충분히 파악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사회가 변모하고 있다는, 최소한 변모를 앞두고 있다는 감각내지 기대가 형성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본 논문의 목표는 이와 같이 새로운 사회의 도래에 대한 기대 섞인 전망이 1960년대 말 특정 시기 한국미술 생산에 주요한 역할을 했음을 밝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그 전망을 일상적인 수준에서가장 구체적이고 가시적으로 구현하고 있던 도시화와 일상환경의 변모에 당시 일군의 오브제, 환경, 해프닝, 기하학적 추상 작업이 반응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따라서 탈-캔버스 작업으로 나아갔던 포스트-앵포르멜 세대의 젊은 미술가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패턴을 채택하여 자신의 회화를 일신하려했던30-40대의 기성미술가들을 포함한 1960년대 말 선진적인 한국의 미술가들 사이에서, 일종의 도시적인 것으로의 전환이 일어났음을 확인하고 그 전환에 놓인 기대감을 강조한다.
비록 이 전환이 기존 미술사 서술에서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것은1960년대 후반 비평가 이일에 의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전위’의 태도로 강조된 바 있었다. 그의 표현에 따라 ‘도시문명에의 참여’라 부를 수 있는 그 태도는 저항이나 반항을 존재이유로 하던 기존 앵포르멜 미술가의 실존주의적 태도와 결별하고 도래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호응(‘참여’)내지, 최소한 중립적인 대응(‘확인’)을 특징으로 했다. 본 논문은 ‘도시문명에의 참여’가 당시 미술가들 사이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태도나 관념으로 부상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를 앵포르멜 이후 새로운 미술의 등장을 바라는 당시 미술계의 강렬한 요구,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당대 해외미술에 대한 직간접적 정보의 증가, 그리고 서울의 급격한 도시화와 그에 수반된 낙관주의적, 미래주의적 도시담론의 확산과 같은, 미술적이고 사회-공간적인 여러 요인들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로 파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