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조선시대 궁중 회화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감계화 중에서도 이상적인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제왕으로 교육하기 위해 제작된 歷代帝王故事圖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조선후기에는 태종과 성종 연간 이래의 전통을 계승한 명군도와 암군도유형의 역대제왕고사도가 고종 연간까지 지속되었고, 한편으로는 帝鑑圖說과 養正圖解 같은 明代 帝王學 교재의 유입에 따라 이를 반영한 제감도와양정도 내에서 중요한 편목으로 구성되어 제작된 경향을 보인다. 대표적으로숙종 연간에 제작된《善惡圖屛》과 영조 연간에 제작된 여러 養正圖 병풍과《善可法帖》이 그러하다.
그림의 소재가 되는 일화는 조선초기 이래로 국왕의 經筵에 사용된 資治通鑑과 資治通鑑綱目 등 史書를 비롯하여 앞선 명대 제왕학 교재에서주로 출전되었고, 肅宗~英祖 연간에는 궁중에 유입된 演義小說類 문학작품의내용에서 선정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 역대제왕고사도 중 명군으로 周 文王의 ‘澤及枯骨’과 ‘寢問視膳’, 商 湯王의 ‘放羅四方’의 일화가 주로 그려졌고,암군으로는 정권 말기에 이르러 여색과 주연에 빠져 실정한 吳王 夫差와 唐玄宗, 방술에 빠져 불로장생을 염원한 漢 武帝의 일화가 선호되었다.
조선후기 왕실의 역대제왕고사도는 성종 연간 이래로 정조 연간까지 주로 8폭·10폭·16폭 형식으로 제작되었고, 영조 연간에는 화첩이나 책자로 제작되어 高宗 연간까지 이어졌다. 병풍은 주로 화면 위에 撰文과 讚詩를 넣고, 화면에는 그림을 그려넣는 上書下圖로 구성되었다. 특히 영조 연간에 제작된 일련의 양정도는 왕세자의 나이에 맞춰 화면의 상단에 諺書로 내용을 기입하고,화면에 그림을 그려넣기도 하였다.
또한 金弘道의 《중국고사도》4폭병풍처럼 화면의 도상이 중국의 역대제왕고사도와 동일한 화면 구성을 보여 그 일화를 그렸던 이전 작품의 先例를 따르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화가 자신만의 개성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궁중 회화의 보수성과 감계적 목적을 내포한 尙古 정신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