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막부가 개항을 단행했을 때, 일본 예술가들은 서둘러 그들의 무대를 넓히고자 하였다. 이는 우키요에와 공예품으로 시작된 자포니슴 열풍과 맞물렸다. 만국박람회를 교두보로 그들은 춤 공연과 예술공예품들을 전시하는 등, 서양인들의 이국취향을 고취시켰다. 그러한 공연과 예술작품들이 성행하던 그 때, 한 여배우가 신체표상으로서 일본을 알리게 된다. 우키요에와 같은 정적인 예술작품에서 자포니슴을 나타냈던 게이샤가 일본 여배우 사다얏코의 등장으로 다이내믹한 자포니슴을 표상하였다.
서구인들은 근대화된 일본보다 동양적인 미를 가득 담은 일본이미지를 더욱더 선호했다. 또한 일본 입장에서도 이러한 서구인들의 동양에 대한 이국취향은 일본의 국제위상을 높이는 전략이 될 수 있었다. 사다얏코가 몸담았던 가와카미 극단은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형태의 연극 속에 일본의 전형적인 미와 드라마 연출법을 구체화시켰다. 사다얏코가 보여준 신체표상은 동양적인 것에 대해 차별적 시선이 존재했던 시기에 서구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낸 예외적인 성과였다. 인류의 보편적인 예술 주제인 에로틱한 사랑과 죽음을 신체표상으로 승화시킨 것이 사다얏코의 성공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