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먼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중세인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그들의 생각과 행위,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었던 유가 경전 - 특히 『논어』와 『맹자』 -에 나타난 가난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경전에 제시된 ‘가난(貧과 窮)’은 경제적인 어려움보다는 나라에 道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정치적 불우(不遇)’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가난한 삶’도 부조리한 현실에 영합하지 않고 공맹의 도를 굳건하게 지켜나가는 삶을 의미한다는 것을 밝혔다. 조선시대 고전시가 전반에 사용된 ‘가난’과 ‘가난한 삶’의 의미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고전시가에서 가난이 경제적 어려움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적어도 18세기 이후부터이다.
본고에서는 특히 그동안 논쟁의 중심에 있던 17세기 박인로와 정훈의 가사문학에 나타난 ‘가난’에 주목하였다. 두 작가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가난의 원인이다. 16세기까지는 ‘가난-정치적 불우’의 원인을 부도덕한 개인이나 권력집단으로 인한 혼탁한 정치현실에 있다고 보았다. 반면 두 작가의 작품을 포함한 17세기에는 상하층을 막론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념적 해이, 즉 풍속의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시기가 임진왜란 이후의 정치 경제적 혼란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금나라의 성장 및 명나라의 멸망이 진행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즉 17기에는 부조리한 현실의 원인을 부도덕한 권력집단의 문제를 넘어 中華文明의 위기라는 차원에서 바라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