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냉전 체제 형성기 가난 서사는 민족국가를 상상하게 한다. 그것은 국가가 가난하고 척박한 국민의 삶을 개선할 것이라는 환상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그러한 환상의 강화 속에서 국민 삶의 개선을 위한 국가 통치 권력의 정당성을 추인하게 한다. 이때 조선인은 국민됨을 자각하는 동시에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하게 되고, 국가는 자신의 통치 권력이 개인들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망각한 채 바로 그 개인들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탈식민-냉전 체제 형성기 한국문학의 가난 서사는 국가를 추인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했다. 그것은 빈자와 빈곤의 문제를 국가 없는 삶으로 등치시켜, 국가라는 형식에 대한 의문을 괄호 치게 한 혐의가 짙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국가라는 형식 그 자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