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60년대의 벽지교사수기와 하근찬의 초기작품을 견주어봄으로써 개발이데올로기가 연민이라는 감정을 전유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글이다. 벽지교사수기들에서 ‘가난’은 전근대적인 비참의 형상으로 표상된다. 국가주도의 근대화 시기, ‘격려’와 ‘의무’의 메커니즘 속에서 호명된 벽지교사는 근대화의 수혜가 닿지 않는 낙도와 산간벽지에 파견되어서 악조건과 싸워야 했던 고난의 주인공들이다. 복지의 빈틈을 메워나가는 주체로서 벽지교사들은 중간지식인의 의식을 지닌 채 국가의 제도적 복지를 매개하는 시혜자 역할을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절량농가의 극빈이 낳은 시각적 충격에 노출된 채 ‘눈물’의 정서에 사로잡히는 이들 근대화의 주체들은 연민을 통해 자율적 자기희생에 투신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1960년대 교육잡지들이 벽지교사수기를 공모하고, 선정/수상작이 자기희생적 헌신의 서사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은 타자적 윤리로서의 연민이라는 감정이 산업화 시대의 인정주의 아래 정당화됨으로써 국가권력에 동원되는 기제임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