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7세기 전란 관련 몽유록에서 발견되는 ‘죽음의 형상화’가 갖는 의미를 논구한 것이다. 저간의 몽유록 연구에서 이 형상화된 죽음은 으레 현실성 강화의 차원으로 설명되고 말았지만, 이번 논의를 통해 그것은 이 시기 몽유록을 그 주변으로부터 변별하는 중요한 자질임을 확인했다.
대개 몽유록은 실존했던 인물을 소환하기에 죽음과 친한 글쓰기 양식으로 인식되지만, 실정을 해부해본바 전란을 경유한 17세기 초에 이르러 비로소 죽음의 프레임이 가동되고 있었다. 15~16세기에 산출된 몽유록이 죽은 이를 등장시키면서도 그들에게 죽음으로부터 연상되는 여러 인상을 부여하지 않았던 데 반해, 이 시기 몽유록은 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시각화하고 죽음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몽유록의 전통에서 변화의 지점으로 지목되는 형상화죽음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동시기 글쓰기장에 취재된 죽음의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양식인 실기류는 전란의 체험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만큼 다수의 사례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 양상을 저작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누어 보았다. 우선 공적 실기류는 죽음을 보고의 대상으로 또는 사건의 경위 중 하나로 취급하고 있어, 몽유록의 죽음과는 접맥하지 않았다. 반면 사적 실기류는 죽음을 기술한 뒤 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부기하고 있었다. 또 간혹 죽음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장면도 포착되었는데, 이러한 면모는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주시한다는 점에서 몽유록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몽유록의 죽음은 이와도 구별되어야 했다. 실기류가 죽음을 다루는 태도와 창작의도 간의 연동을 보여주는 반면, 몽유록은 이 둘의 관계가 어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몽유록은 이면의 실상을 폭로함으로써 현실 상황을 재편하려는 매우 정치적이고도 이성적인 의도를 갖고 있다. 그런데 형상화된 죽음은 감정적 차원의 처리방식에서 보이는 특징들을 함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괴리는 죽음의 형상화가 담당한 기능을 추적하는 발판이 되었다. 형상화된 죽음이 작품의 초반에 배치된 점, 죽은 이들의 감정 분출이 결국 독자들의 감정적 요동을 야기한다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한바, 그 일차적인 기능은 독자들의 감정적 수용태도를 우세하게 하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몽유록의 작자는 작품 전반에서 이성적 설득보다 감정적 동조를 얻어내기 위한 서술방식을 구사하고 있었다. 이 전략은 독자의 마음을 선동하는 기민한 전략이지만, 자칫 이성적 저항에 부딪히기 쉬운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몽유록의 서술전략을 감안할 때, 작품의 초입에 배치된 형상화된 죽음의 핵심적인 기능은 독자의 감정적 수용기를 활성화함으로써 이성적 무장을 해제하여 이 약점을 보완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요컨대 죽음의 형상화는 잠복된 이성적 의도를 용이하게 성취하기 위해 독자의 감정적 동조를 조준한 몽유록의 전략을 완성하는 전초적 장치라 하겠다. 이는 죽음을 소재로써 취집한 실기류와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