卞相璧(약 1726-1775)은 英祖代에 활약한 圖畵署 畵員으로 翎毛花草畵, 肖像畵 분야에서 명성을 얻으며 발군의 기량을 드러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상벽에 대한 연구는 그가 그린 작품의 단편적인 해석에만 머물러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그 동안 막연하게 알려져 온 변상벽의 생애를 정리해보고 그의 작품들 중 회화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다고 생각되는 영모화초화의 양상을 고찰해 보았다.
변상벽은 영남의 명문인 密陽卞氏 孝亮公派의 21대 손으로 무관 卞雲瑞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역관으로 활동한 5대조 卞應星 때 부터 집안이 중인층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이며, 변상벽을 필두로 양아들인 卞光復과 조카인 卞光翼이 화원으로 활동하였다.
변상벽의 영모화초화에 대한 기록으로는 鄭克淳의 『庶尹公遺稿』속 「卞氏畵記」가 유일하며 이를 통해 변상벽의 생년과 성격, 영모화초화의 도상과 작화계기, 작화태도 등을 알 수 있었다.
변상벽 작품들은 영모화초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당시 시대적 유행을 복합적으로 수용한 모습을 보였다. 중국에서 고양이와 닭을 주제로 한 작품이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宋代 부터로 北宋代 『宣和畵譜』 속 기록과 당시 작품들의 도상이 전해지며 이것이 조선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고양이와 닭을 주제로 한 작품과 기록은 李巖, 鄭歚의 작품들과 金中淸, 南有容, 李瀷, 丁若鏞등이 남긴 기록들이 있는데, 이 또한 조선후기 영모화초화에 선례가 되었다. 18세기 조선의 화단에서는 문인들의 사상적 변화에 의한 형사적 회화관의 대두, 중국화보의 수용 등이 유행하여 당시 문화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변상벽의 영모화초화는 영조어진을 제작하며 인연을 쌓았던 金弘道와 변상벽의 작품을 감상하고 제발을 남겼던 馬君厚 그리고 변상벽이 고양이 그림을 그려준 동래정씨 가문과 사돈관계에 있었던 南啓宇 등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들은 모두 변상벽의 작품과 유사한 소재 및 구도로 영모화초화를 제작하였다.
이 논문은 변상벽의 가계와 생애를 정리하고 그간 단편적으로 거론되었던 변상벽의 영모화초화를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추후 새로운 사료 및 작품의 추가발굴을 통해 보다 정확한 변상벽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한 고찰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