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이론이 실재적 작품생산에 있어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케이스 스터디 같은 논문이다. 본인의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뤼스 이리가레의 이론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업을 해 나간 과정들을 서술함으로써 이론과 창작의 관계맺음의 한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본 논문의 의도이다.
페미니즘 이론을 연구하고 도예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나는 두 영역의 사이에 존재한다. 두 개의 다른 영역의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은 두 영역의 사이에서 여기 갔다 저기 갔다를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일까? 혹은 두 영역 사이의 중간지점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사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에서 둘 이상의 주체를 상정하고 두 주체 간의 물리적 혹은 시간적 거리를 함축한다. 후기 구조주의 이후 위계적인 이분법 구도를 탈피하고자 하는 전략, 혹은 대안으로 많은 이론가들이 사이개념을 논의해 왔다. 여성 주체성(feminine subjectivity)과 성차의 윤리(ethics of sexual difference)를 주장하는 이리가레 역시 사이로서의, 사이에서의 사유를 강조한다.
이리가레에 있어 사이는 둘 사이의 ‘삭제된 통로’이다. 이리가레는 사라져 버린 사이라는 개념의 자취를 밟기 위해 플라톤의 동굴로 되돌아가 마침내 사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더 정확하게는 어떠한 방식으로 사라지는지를 더듬어낸다. 이리가레가 논의하는 사이는 양극을 연결하여 그 개념적 경계를 흐리는 통로일 뿐 만 아니라 점액질의 논리와 연결되는 매개를 위한 공간이며, 물질성을 배제한 눈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또한 이리가레는 모든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관계가 (질료와 형상 뿐 아니라 힘, 에너지, 욕망까지도) 변형되는 순간으로 사이를 개념화한다. 그러므로 사이, 간격은 채워야 하는 욕망의 장소가 아니라, 욕망이 변화의 힘으로 작동하는 공간인 것이다. 이리가레는 사이를 간격(interval), 매개(intermediary), 제 3의 것(third term) 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태반, 사랑, 천사에 비유하기도 한다. 무엇이라고 이름 짓든 간에 그 의미는 한 항과 그 반대 항 사이의 존경스럽고 사랑하는 만남, 다른 항이 다른 한쪽 항을 지배하지 않는 상호주체적인 만남이다.
이러한 이리가레의 사이에 대한 사유는 이론과 창작의 사이를 고민하는 본인에게 지속적으로 그 사이를 걸어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 이론과 창작의 사이, 그 간격은 없애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한 항이 다른 항으로 변환되는 공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에너지가 끊임없이 변환되는 힘의 공간/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