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해방공간 이후 현재까지 한국미술의 다양한 분야들, 창작과 이론, 비평, 교육, 전시기획 등의 전문화된 영역에서 서양미술사가 그러한 신화로,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적 내러티브 기제로 작용해 왔으며, 그 결과 우리가 우리 미술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성찰하는 인식의 토대가 왜곡되어 왔고, 그 여파가 오늘날의 동시대미술까지 미쳐 여전히 가볍지 않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 또한 그것이다.
서양미술사의 전망과 관점이 우리의 인식과 판단에 ‘신화적 거울’로 작동하는 동안, 그것에 반사된-맥락화된- 해석을 통해서만 우리 미술을 설명하고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독자성과 자율적 판단, 의구심을 통제하는 검열기제로 작용했고, 이로부터 원류에 의해 상대화된 자각, 아류의식, 대국(大國)에의 자발적인 예속, 선진적인 것을 따는 추종자의 감성이 양산되었다.
서양미술사 내러티브가 신화적 거울로 작동하는 배후에 늘 일정한 정치적 자장이 작동해왔다. 때로는 완강한 정치적 분위기 조성이나 보상기제의 활용을 통한 동기부여 안에서 ‘서양’이 유일한 선택지로서 권장되거나 촉구되었고, 미술 장은 서양미술사의 내러티브를 적극적으로 차용, 편승함으로써 그러한 정치적 노선에 직, 간접적으로 부응했다. 그러므로 서양미술사를 다시 읽는 이 논의에는 서양미술사 내러티브에의 동조, 편승이 정치적 정당화기제로 활용되도록 해온 예술의 정치화, 또는 정치예술의 맥락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내포되어 있다. 논의는 또한 ‘동원된 서양미술사 내러티브’의 신화화된 기제 안에서 스스로를 인식해온 한국현대미술의 타자성의 문제와 부득불 결부될 수밖에 없다. 즉, 서양미술사 다시읽기의 궁극적인 취지는 오히려 ‘동원되고 특권화된 서양미술사 내러티브’와 그것의 중요한 배후로서 정치적 선전기제라는 두 축에 의해 지지되어 온 한국현대미술을 난맥상을 짚어보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현대미술의 연대기적 세 지점, 곧 1950년대의 앵포르멜, 1970년대 한국적 모노크롬 또는 단색조 회화, 그리고 1990년대의 글로벌미술화의 기점이 이 논의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져야 했다. 이 각각의 세 지점은 신화화된 서양미술사 내러티브와 정치적 선전기제의 제휴가 매우 긴밀하고 관찰 가능한 형태로 발현되었던 시기이고, (아마도 그 결과이겠지만)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 중요한 진전을 이룬 시점들로 이해되어 온 곳들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이승만 정부가 반공이데올로기로 분위기를 몰아갈 때,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유럽의 앵포르멜을 추종하는 노선이야말로 실로 훈장을 수여받을만한 화답이었다.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이끌었던 제3공화국에 의해 선포된 유신체제가 한국의 정치체제를 서구의 민주주의와 다른 것으로 만들고자 했을 때, 같은 추상이로되 ‘한국적 추상’을 주창한‘한국적 모노크롬’이나 단색조 회화는 결과적으로 체제의 노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1995년을 세계화의원년으로 삼았을 때, 한국미술은 21세기 초일류국가에 걸맞는 세계화된 미술을 위해 글로벌 무대에 가담하는 소통행위, 블록버스터 전시와 행사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부(富)에 편승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세계미술론, 아시아 맹주론 등으로 스스로를 고무시키면서, 비판과 해석능력을 상실한 채 시장 유토피아와 환전성(換錢性)의 가치에 급속하게 매몰되었다.
한국현대미술의 연대기적 세 지점에 다가섬으로써, 서양미술사의 내러티브가 어떻게 우리 현대미술사의 전환기에 개입하고 관여해 왔으며, 또 어떻게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정형화되어 왔는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반복과 정형화의 연대기는 서양미술사가 한국현대미술 장에서 신화적 지위를 확립해 온 과정 자체이기도 하다.
한국미술의 현대사는 정치와 정책이 앞서 동기를 부여하거나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것에 뒤따라 부응하는 한 축과 오류와 시행착오의 위험부담 자체가 사전적으로 제거된 선진적 서양미술사 내러티브를 유입하고 특권적인 보편성의 신화로 자리매김하는 다른 한 축이 서로 맞물리면서, 즉 정치와 신화의 상호작용에 의해 동일한 양태를 반복해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조장과 분위기 조성에의 순응, 그리고 신화 의존적 사유로 기억과 해석의 위험을 사전적으로 제거하는 정형화되고 구조화된 지적 예속에 대한 직시와 강한 비판이 나타날 때에만 우리는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