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오키나와의 장례방법은 세골장(洗骨葬)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오키나와에는 세골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세골장이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장례방법이긴 하지만 세골장 외에도 풍장(風葬)과 토장(土葬) 등의 장례방법도 공존하고 있다. 이 글은 오키나와에서 풍장과 세골장 그리고 토장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 다른 목적은 이 세 가지 장례방법 중 세골장이 오키나와의 가장 대표적인 장례방법으로 인식되게 된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다.
풍장은 류큐코 전 지역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미야코지마를 포함하는 류큐코의 남부 지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장례방법이다. 반면 세골장은 오키나와 본도 이북 지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오키나와 본도 이북 지역의 세골장은 중국 동남부 지역의 영향을 받은 가메바카의 도입으로 본격화 되었다.
한편, 류큐왕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아마미 일대를 자신의 영토로 편입한 사쓰마번은 아마미 지역에 풍장을 금지하고 토장을 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아마미에는 문화접변이 일어나게 되었다. 아마미에는 이후 토장이 일반화되었으나 오키나와 본섬과 가까운 지역에서는 토장을 하지만 세골장도 함으로써 세골장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세골장이 오키나와 문화의 핵심적인 문화요소로 인식되고 있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류큐코 일대의 장례방법은 지역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풍장과 세골장 그리고 토장이 공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풍장은 미야코지마 일대에서, 세골장은 오키나와 본도 일대에서 그리고 토장은 아마미 일대에서 중심이 되는 장례방법이다. 이는 문화적 교류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류큐왕국 이전까지는 미야코지마를 경계로 풍장권과 세골장권이 나누어졌지만 류큐왕국 이후 세골장이 류큐왕국의 전 지역에 파급되었으며, 사쓰마의 침공 이후에는 토장이 류큐코 일대에 확산되었다. 그러나 류큐왕국의 지배 범위 안에서 세골장은 여전히 문화적 전통으로 기능하고 있다. 최근 화장이 도입된 이후에도 세골의 관습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세골장의 전통이 이 지역에서 지배적 전통임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