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현재에 살아 있는 과거이며, 현재와 과거가 연결되어 있음을 입증하는 상징들이자 표상이다. 이것은 스스로 역사를 ‘공유’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합의하여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보존과 전승의 필요성을 인정한 ‘낡은 것들’로서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 모두와 관계를 맺는다. 전통이라는 단어는 자주 ‘과거로부터 면면히 전승되어 온 공동체 문화의 정수’라는 의미의 접두어로 사용된다. ‘전통들’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가까운 과거’에 발명되었지만 그것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관습과는 달리,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일반적 믿음의 대상이다.
그런데 대상을 ‘전통들’의 집체 또는 연쇄로 구성되는 도시 공간으로 확장하면, ‘전통의 불변성’이라는 명제를 더 이상 고수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의 거리’인 인사동의 경우, 1988년 서울시에 의해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었으나, 2014년에도 서울시와 종로구는 ‘인사동 전통문화 거리’를 ‘되살리는’ 계획을 수립, 추진 중이다. 인사동 공간이 변화함으로써 ‘전통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그를 재구성하고 보수하겠다는 것이 이 계획의 취지다. 그런데 인사동의 가로 경관과 분위기를 구성하는 전통들의 훼손과 변형에 대한 지적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인사동의 변화에 대한 불만은 1960년대부터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다.
생활과 사회관계의 급속한 변화가 전통의 ‘발명’을 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도시 공간의 급속한 근대화도 전통 공간의 ‘발명’을 필요로 했다. ‘전통 공간의 발명’은 변화가 일상이자 정상인 근대 도시 공간 내에 변화가 억제 또는 유보된 장소를 남겨 둠으로써 도시의 역사성과 지속성을 표현하려는 집단적 욕구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 공간은 서화나 골동과는 달라 화석 상태로 유지할 수는 없다. 전통 공간이란 변화가 정책적으로 억제, 관리되는 공간일 뿐이다. 변화 속에 ‘불변성’을 끼워 넣어야 하는 이율배반 때문에, 도시 공간의 전통성은 수시로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또 전통은 ‘발명’되기도 하지만 과거의 여러 자원들 중에서 ‘발굴’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전통문화의 거리 또는 전통 공간을 관리, 보존하는 문제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낡은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여 전통의 이미지를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서울 인사동이 한국적 전통, 또는 서울의 전통문화를 표상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변화해 온 과정은, 한국인들이 ‘전통’으로 인정한 요소들이 특정한 도시 공간 내에 어떻게 퇴적되었고, 그것들이 어떤 이유로 보존 또는 발굴되었으며, 어떤 필요와 관점에서 상호 연계를 맺고 ‘전통’의 이미지를 구성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이 연구는 인사동의 ‘전통’을 구성하는 요소로 인정되는 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가를 살핀 것이다. 현재 인사동의 경관을 구성하는 ‘전통적 요소’들은 거의 전부가 ‘근대의 산물’들이다. 인사동은 한국인이 최초로 근대적 민영 출판사를 설립한 곳, 한국 최초의 근대적 고서점이 자리 잡은 곳, 한국인 洋醫가 처음으로 개인병원을 낸 곳, 한국인이 처음으로 ‘바’를 차린 곳, 조선체육회와 조선음악가협회가 처음 자리 잡은 곳,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 있는 곳이다. 이들이 처음 인사동에 ‘전통’의 이미지를 부여했고, 1970~1980년대 서울의 다른 지역들에서 ‘전통 경관’들이 급속히 소멸한 뒤 인사동을 ‘전통문화의 거리’라는 특별한 지위로 올려놓았다. 그런데 도시 공간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억제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 ‘전통’의 이미지는 수시로 재구성되어야 했다. 인사동에서 ‘전통’이 형성, 발굴, 창조, 재구성되어 온 방식은 향후 서울의 ‘전통경관’ 또는 ‘전통공간’과 관련한 논의에 풍부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