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고정희 시 연구사 20년을 경과하면서 양적 축적을 넘어서 연구 폭과 상상력의 확대라는 차원의 문제의식 하에 기존 연구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고정희 시의 또 다른 특징을 포착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한국 페미니즘 시의 선구자로서의 위상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주로 후기 시집들 중심으로 고정희 시 논의가 집중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정한 이념을 전제하고 그것을 최상의 가치로 전제한 논의는 자칫 11권에 걸쳐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 준 고정희 시 세계의 외연과 내포를 축소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 하에 이 글에서는 고정희 초기 시를 조명하는 한 방법으로 음악적 모티프의 수용이라는 차원에서 논의를 전개하였다. 우선 근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서양음악이 수용된 맥락과 고정희가 이를 수용한 맥락을 조명하였다. 그 후 고정희 초기 시의 음악적 모티프를 크게 클래식음악과 기독교음악으로 구분하고, 특히 클래식음악은 낭만적 방랑, 암흑의 시대와 디아스포라, 음악형식의 시적 전유라는 세부 항목으로 구분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
본고는 우선적으로 페미니즘이나 탈식민주의와 같은 이념적 틀에서 주로 이해된 고정희 시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그 일차적인 의의를 둘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본고는 문학의 영역을 넘어 문학과 인접 예술의 관련 양상이라는 보다 거시적인 국면에서의 접근이라는 점에서 현대사회에서의 예술의 존재 방식, 교섭 양상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