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유학계에서는 기존의 전통적 지배이념이었던 유학을 전면적으로 개혁하여 근대종교화하려는 흐름이 나타났는데, 이병헌(1870-1940)은 그 가운데 캉여우웨이(康有爲)의 금문경학에 기반을 둔 공교운동을 전개했던 인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필자는 이병헌의 유교론은 그가 금문경학 연구에 몰두하기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구한말 일제 식민지배에 처한 지식인의 고민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병헌은 서구의 문물과 사상에 대하여 배타적이기보다는 소통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타종교 전통들,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종교란 구세(救世), 즉세상을 구원하는 것이고, 유교란 바로 공자의 가르침(敎)인데, 공자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교주이므로 유교는 종교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오직 공자의 가르침이 담긴 경서의 해석에 입각하여 유교의 신도(神道)를 부각시킴으로써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상식적 견해를 불식하려 했다.
유교를 공자의 敎라고 규정했던 이병헌에게 공자가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상제나 天, 태극 등 유교의 궁극적 실재에 대한 논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윌리엄슨의 〈상제비태극〉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이병헌은 그의 성리학적 소양, 특히 한주학(寒洲學)의 계승자로서의 면모를 발휘하였다. 이병헌은 태극은 지각과 영명한 지혜를 갖춘 理이고, 理는 주재자이며 또한 유교 경서에 나타나는 天이요, 상제라고 하면서, 형체를 가진 기독교의 상제가 理를 창조했다는 윌리엄슨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이병헌은 유교의 종교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공자의 가르침, 즉 유교에서 神과 신도를 강조했으며, 공자는 입신(入神)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함으로써 이 유교의 핵심을 유교인 들에게 의미 있게 정착시키고자 했다. 이를 체계화하여 표현한 것이 다름 아닌 ‘마음이 곧 신(心卽神)’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한주학의 주리론적 ‘심즉리설(心卽理說)’에서 벗어난 한국 유교의 심설(心說) 전통의 새로운 전개일 뿐 아니라, 유교적 종교체험의 보편성을 가능케 하는 논리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