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종교와 과학의 대립을 ‘마음’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극복하고자 한 칼 구스타프 융의 사유와 그 인식론을 검토한다. 종교와 과학 사이에 가교를 놓고자 한 융의 시도는 단순히 양측의 화해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물질과 정신이 근원적으로는 같은 세계에 속해 있으며 양측은 서로 끊임없이 접촉하고 있다고 보았다.
“대극의 합일”이라는 융의 관점에서 물질과 정신은 동일한 사물의 두 측면이기 때문이다. 외적인 측면을 조명하는 과학과, 내적인 측면을 조명하는 종교는 따라서 인간 경험이 수렴되는 심혼 속에서 합일 될 수 있다. 이러한 융의 인식론은 그의 플레로마와 크레아투라에 대한 논의에 잘 반영되어 있으며, 영국의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융의 인식론을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인식론으로 적극 수용하여 정신과 자연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했다.
융의 종교와 과학에 대한 비판은 통속적인 비판의 내용, 즉 종교를 비합리적 영역으로 소외시키거나 극단적인 과학주의를 비판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 양측 모두에게 결여된 것은 바로 인간의 “인격적 경험”에 대한 깊은 조명이었다. 따라서 융은 분석심리학이라는 공간의 창출을 통해 종교와 과학의 상호작용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재편하여 제시하고 있다. 융의 이러한 인식론적 통찰을 통해 우리는 종교와 과학을 양 극단으로 인식하는 입장이나, 중립적으로 화해시키려는 전통적 입장을 넘어선 새로운 길로 나아갈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다. 플레로마와 크레아투라, 정신과 물질의 접촉, 종교와 과학의 대화의 과제란 오히려 인간의 개성화와 성숙과 긴밀히 연결된 매우 중요한 인격적, 학문적 과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