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시의 저급한 패러디양식으로 간주되었던 언문풍월이 개화기의 국문 의식과 신시 의식의 교차 속에서 국문-시의 한 가능성으로서 추구되었으며, 전통적인 시의 이상을 이어받아 새로운 시의 양식을 창안하고자 했던 1920년대 시 담론의 한 기원으로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논의하고자 하였다. 형식과 언어, 내용의 차원에서 각각 전통을 계승하고 결별하는 지점을 달리 설정했던 개화기의 세 가지 신시 의식의 토대 위에서 언문풍월은 ‘순국문으로 쓰인 한시’라는 ‘신시’로 창안되었다. 언문풍월이 현상공모전을 통해서 그 형식을 가다듬어 갔다는 점, 공모문에서 항상 ‘순국문’과 ‘한시 형식’을 강조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언문풍월은 대중의 언어 유희에 그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의 당당한 한 양식으로서 그 지위를 확고히 하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의지에 의해 추인된 장르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1920년대의 가람의 시조 형식론과 김억의 격조시형론에 이어지며, 언문풍월을 통해 국문-시의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했던 시적 인식은 한국 근대시의 한 기원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