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근대 이후 보편성 혹은 공공성은 수학을 기초로 하여 가늠되었다. 근대에 발전된 공공성의 이념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정착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근대 자연과학에 기초한 이러한 공공성은 오늘날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단지 수적인 우세에 따른 다수결의 원리로 전락해 버렸고, 자본주의는 특정한 계층의 이익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전락해 버려서 그 공공성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해석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국부론』은 자주 개인의 이익추구를 정당화하는 경제철학으로 이해되었다. 즉 개인이 이기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 저절로 모두가 다 잘 살게 되는 조화로운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는 생각의 단초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국부론』을 쓰기 17년 전에 쓴 『도덕감정론』에서 공감에 기초한 도덕이론을 발전시켰는데, 여기서 그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라고 보았다. 경제활동도 마찬가지이다. 스미스에게는 도덕적 삶과 경제적 활동이 분리되지 않는다. 단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역지사지에 입각한 상호 이익의 추구가 그가 지향한 목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영심에 찬 개인들이 근면하게 열심히 일함으로써 나라 전체의 부는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이것이 스미스가 생각한 공공성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잘못 이해된 근대 민주주의의 공공성과 자본주의의 공공성은 스미스가 제안한 이러한 공감의 공공성, 곧 그때마다의 신중과 해석을 요구하는 해석학적 공공성의 이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