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선(朝鮮) 정치의 특색을 고려한 정치철학적 관심을 투영하여 ‘공공성’과 ‘공론정치’의 지평에서 정조(正祖)의 탕평책에 접근하여 그 내용과 성격, 그리고 가치 위상을 규명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하였다. 단 조선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고 조선에서 인정되는 공공성은 성리학적 가치였다. 공론 또한 유교적 천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본고는 조선의 정치이념이나 정치현실 속에 존재하는 공공성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공공성 개념을 한정적으로 적용하였다. 공공성의 극대화를 꾀하는 조선의 공론정치는 한나 아렌트가 구분하는 ‘진리의 정치’와 ‘의견의 정치’의 속성이 혼재된 형태이다. 따라서 본고는 한나 아렌트의 정치 구분 도식을 사용해 정조의 탕평책이 가진 원리와 그것의 전개 양상을 분석하였으며, 그 결과 정조의 통치 전반기에는 준론탕평이 의견의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긍정적인 측면이 돋보이고, 통치 후반기에는 탕평의 중심축인 황극주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진리의 정치로 치우치는 준론탕평의 퇴색적 측면이 두드러짐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볼 때, 정조의 준론탕평책은 원리적으로는 원융(圓融)의 공공성과 자유로운 공론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묘책이지만, 공론장의 중심에 권위적 황극을 두고 있는 한, 황극의 절대화가 강화되고 그 황극이 공론과 정치를 주도하면 할수록 현실의 공론정치는 와해되고 공공성이 제약된다는 역설적 측면을 안고 있다. 정조가 구상한 탕평의 공론정치는 유림(儒林)이 원래적으로 추구했던 공론정치에 비했을 때, 이념적으로는 공공성의 폭과 깊이가 더 넓고 심오하며 나아가 논쟁적이면서도 평화적인 공론정치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공론의 활성화를 억누르는 반정치적 성격이 강한 나머지 시혜적 공공성을 제외한 공공성의 다른 측면들은 심하게 위축시키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