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0년대 초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연쇄적인 폭탄 테러들에 대해 아세안 국가들이 기존의 일국적 대응방식에서 벗어나 어떻게 지역차원의 공조를 수립할 수 있었는지를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당시 아세안 회원국들은 저마다 다른 대내외적 환경에 놓여 있었고, 폭탄테러라는 ‘돌발적이고 의도적인 재난’에 부합하는 효과적인 대응 방식을 취하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특히 이 과정에서 ‘아세안 방식’으로 불리는 대외관계의 원칙은 지역차원에서의 공조체계를 구축하는데 상당한 장애요소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아세안은 계속적인 논의와 협력을 지속하여 결국 법적‧제도적 효력을 갖춘 ‘아세안 안보 공동체'를 출범시키게 되는데, 본고는 이 과정에서 나타난 싱가포르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싱가포르는 ‘폭탄’이라는 비인간 행위자가 갖고 있는 속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아세안 뿐만 아니라 역외의 주요 행위자까지 포괄하는 인상적인 네트워크 전략을 전개하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초국가적 테러를 지역안보 이슈로 쟁점화하는 프레임 짜기에서 시작하여 맺고 끊기, 내 편 모으기, 표준 세우기에 이르기까지 ‘번역의 4단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즉, 이 과정에서 주권 불가침이라는 기존 아세안 방식 체제의 ‘블랙박스’를 닫고 있는 네트워크를 균열시키고, 실효적 협력체제라는 새로운 대안적 네트워크를 건설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싱가포르의 성공적인 네트워크 전략은 지역의 비강대국이라도 초국가적 재난 이슈를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견국인 우리의 외교전략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