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의 15, 16세기는 해외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한 중계무역을 통하여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며 독자적 문화 발전을 이룩했던 왕국의 전성기이다. 조선과 중국, 일본과 함께 타일란드, 베트남, 쟈뱌 등 동남아 여러 나라를 연계하는 중계무역에 의하여 경제적 부를 취하였던 것이다.
본고는 이같은 류큐왕국의 교역의 활성화와 발전이 항구를 거점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동시에 경제적 성장이 정치적 성장을 뒷받침하여, ‘우라소에’와 ‘슈리’의 도성 건설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즉 우라소에는 마키항을, 슈리는 나하항을 무역항으로 수반함으로써 경제적 기반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들 무역항을 보호하거나 관리상의 필요에 의한 작은 성(城, 구스크)이 부가적으로 기능하였다. 우라소에의 마키항[牧港]은 이소성[伊祖城]이 그 기능을 담당했고, 나하항의 경우는 오모노구스크[御物城], 미에구스크[三重城] 등이 항구 기능을 보강하는 부속 성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슈리와 우라소에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성의 입지는 큰 차이가 있다. 우라소에가험한 산곡에 위치하여 방어적 상황에 초점이 맞추어진 반면, 슈리의 경우는 개방된 구릉지에 위치함으로써 안정된 정치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 13, 14세기 우라소에 시대가 三山(3국)이 서로 치열한 쟁투를 벌이는 시기였던 것에 비하여, 15세기 슈리의 시대는 류큐왕국이 통일되고 안정된 정치 기반 위에서 국제무역의 중계 거점으로 경제적 활성을 누리던 시기였다. 바로 이같은 시대적 차이를 우라소에와 슈리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