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칭동맹’의 개념을 원용하면 조공체제는 명이 조선에 안보와 경제적 이익, 문화적 자원을 제공하고, 조선에서는 신뢰를 제공하여 명의 안보 비용을 낮춘 거래로 볼 수 있다. 이 때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신뢰는 비대칭동맹 유지의 필요조건이 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조선의 명에 대한 신속(臣屬)이라는 행태와 사대(事大)의 규범으로 표현되었다. 16세기 말 17세기 초 일본 및 후금의 발흥으로, 영향력 있는 행위자 수와 힘의 배분이 바뀌는 구조 변동이 진행되었다. 조선과 명의 양자적 힘의 비대칭성은 유지되지만 명과의 사대관계에 의해 안보를 확보할 수 없게 된 조선은 일본, 후금과의 우호관계 수립을 통해 위협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였다. 이 과정에서 배타적 내속이라는 사대관계의 법적 형식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동맹의 배타성에서 벗어날 방안으로 기미책이 대두된다. 이 글에서는 월사 이정구의 1598년, 1620년 두 차례 변무사행의 사례를 통해 이 문제를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