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슈테이나(Albrecht Václav Eusebius z Valdštejna)의 정치적 활동-30년 전쟁 전후의 시기를 중심으로-
김 장 수
발트슈테이나(Albrecht Václav Eusebius z Valdštejna;Albrecht Wenzel Eusebius v.Wallenstein)는 1583년 9월 24일 보헤미아의 헤르마니체에서 태어났는데 10살 때 어머니 마르케타, 12살 때 아버지 비렘을 잃은 후 숙부인 코슘베르크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발트슈테이나는 1609년 예수회 고해 신부의 주선으로 모라비아 동부, 즉 브세틴, 루코프, 리미체, 스리고 브세투리에 거대한 영지를 소유한 미망인 네크소바와 결혼한 후 풍족한 생활을 했으며, 1614년 그녀가 죽고 난 후 재산 모두를 상속받았다. 이렇게 결혼을 통해 얻은 막대한 부를 축적한 발트슈테이나는 오스트리아의 위정자 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페르디난트 2세의 신임을 얻고자 했다. 이에 따라 그는 1618년 보헤미아 귀족들이 페르디난트 2세의 가톨릭 강화정책과 귀족들의 제 권한 박탈을 빌미로 일으킨 항쟁진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황제의 신임도 얻게 되었다. 이렇게 페르디난트 2세의 신임을 얻은 이후부터 그는 황제권 강화에 필요한 제 방안을 강구했고 그것들을 실제적으로 이행했다. 30년 전쟁 기간 중 발트슈테이나의 권한은 크게 증대되었는데 이것은 황제권을 위협할 정도였다. 특히 발트슈테이나는 1632년 4월 13일 페르디난트 2세로부터 황제군에 대한 절대적 지휘권(in absolutissima forma)을 부여받았을 뿐만 아니라 제국 내 모든 몰수지 들을 우선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특권도 부여받았다. 또한 이 인물은 모든 군사작전에서 독자적인 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황제의 허락 없이 죄를 주거나 사면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았다. 이렇게 발트슈테이나의 권한이 크게 증대됨에 따라 페르디난트 2세는 그것의 제어내지는 배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결국 그를 제거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발트슈테이나를 살해한 후 페르디난트 2세는 보헤미아 지방에서 대대적인 재산몰수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획득한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자신에게 협조한 외국 귀족들에게 하사했다. 이에 따라 30년 전쟁이 종료될 무렵 체코 귀족들의 영지 절반이상이 외국 출신의 귀족들에게 강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체코 민족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 갈 체코 귀족 계층의 위상이 크게 약화됨에 따라 향후 체코의 정치적·문화적 발전을 주도할 세력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비록 발트슈테이나의 지나친 탐욕으로 체코 민족이 암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지만 그것을 계기로 체코 민족은 향후 그들 행보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자세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저력도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