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급진적 페미니스트 넬리 루셀 (Nelly Roussel, 1878-1922)과 마들렌 펠티에 (Madeleine Pelletier, 1874-1939) 연구
신 행 선
본 연구는 프랑스의 급진적 페미니스트이자 산아제한을 주장하던 네오맬더스주의자로 알려진 넬리 루셀과 마들렌 펠티에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다. 그들은 여성들이 자기실현을 위해서 스스로 출산을 할지 안할 지 선택할 권리, 그리고 자신들의 신체를 마음대로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출산의 자유’가 그들의 페미니스트 주장에서 유일한 요소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페미니즘에서 가장 결정적인 테마였다.
그들에 따르면,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에 반(反)해서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를 가진 채 출산을 할 지 혹은 하지 않을 지 선택을 하는 것이 여성들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부분이었다. 그들은 만일 여성들이 어머니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으로 지지를 받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루셀과 펠티에는 스스로 “완전한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며 여성들의 조건과 관련된 문제는 다른 모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보다 우선하는 중요한 것이라고 보았다.
프랑스의 낮은 출생률은 정치가, 개혁가, 인구통계학자들의 관심을 출산으로 돌리게 하였지만, 그들은 출산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기독교 전통이 강하게 유지되던 프랑스에서 희생은 여성의 본성적인 특성에 내재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분만 시 여성의 고통과 생명의 위험은 프랑스 가톨릭 문화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여성들이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으며 그것을 견뎌내야만 하는 것은 “자연적인 특성”에서 나오는 자기 희생으로 해석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페미니즘에서 그들이 낙태를 옹호하거나 그들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출산을 통제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급진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루셀과 펠티에가 모성, 출산에 대해서는 매우 유사한 관심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차이점도 또한 나타나고 있다. 펠티에는 여성들이 “여성성”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루셀은 펠티에가 했던 것처럼 여성을 “남성화”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루셀은 강연 투어 동안에도 기혼여성이자 아이의 어머니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어 이용하였다. 이점에서 독신을 유지하며 여성성이 결여된 것으로 상징되는 펠티에와 루셀은 분명히 달랐다.
이처럼 비주류의 급진적 페미니스트이자 네오맬더스주의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개인적 환경이나 여성성 문제, 페미니스트 활동에서 차이점이 있으며, 이는 ‘여성성’ 문제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의 독트린과 활동에 대한 반응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프랑스 사회의 정치문화에서 젠더시스템의 모순된 점을 드러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