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오 주란의??무(だいこん??는 천황의 종전방송이 있던 8월15일부터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이 이루어진 9월2일까지 18일간에 걸친 패전 정국의 시기를 다룬 작품이다. 1947년 1월부터 대중잡지에 연재되었으며, 그중 점령군 묘사가 두드러지는 제6회분이 ‘게재 보류’의 검열 처분을 받았다??무??의 잡지 연재와 단행본 출간은 점령기 일본의 검열정책이 변화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본 연구에서는??무??의 잡지 연재 판본과 검열 때문에 생기게 된 제6회분의 이본(異本), 그리고 연재 종료 일 년 후에 출판된 단행본판을 비교하여, 그 속에 그려진 ‘패전’과 ‘점령’을 고찰하였다.
점령군을 그리거나 ‘피점령’의 현실을 환기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점령기에 매우 엄중한 검열처분이 행해진다. 그런데??무??는 검열에 걸린 제6회 연재분 외에도 점령군의 모습과 패전국민의 심리를 대담하게 표출한 부분들이 적지 않다. 이는 무엇보다도 1947년부터 검열정책이 완화되기 시작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본고는 그러한 텍스트 외부의 물리적 조건 외에도 텍스트 내부에서??무??의 표현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인들을 함께 분석하고자 하였다.
??무??는 단편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노출하면서도 결국 전쟁의 유일한 책임소재로서 일관되게 일본 ‘군부’를 내세우고, ‘해방군’으로서의 미국을 노골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점령정책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있다. 히사오 주란은 제6회분의 게재 보류 이후에 연재 전체분의 내용을 미리 제출해야 했는데, ‘영미파(英美派) 화평주의자’인 외교관 아버지와 딸 ‘무(사토코)’의 점령정책 순응은 이 소설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지으며 검열관이 연재 계속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리라 여겨진다. 세부적으로는 반어와 풍자가 함께하고 검열에 대처하는 작가의 전략적 순응으로 읽을 수 있는 여지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풍자는 방향성을 잃고, 소설 전체에서 보다 뚜렷한 메시지로 부각되는 것은 표면에 드러난 ‘점령정책에의 적극 부응’이다??무??는 완화된 검열정책의 수혜자로서 ‘프레스코드’나 여타 지침들에서 중요하게 체크하고 있는 내용들 중 상당부분을 건드리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검열 정책 변동에 따른 작가의 심리적 구속의 이완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작품으로 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