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계 정기(栗溪 鄭琦, 1879~1950)의 시는 총 445편으로, 형식에 따라 분류하면 5언시는 133편, 7언시가 299편이고 장시인 「화동역대가」(華東歷代歌) 등 기타가 13편이다. 1편의 시가 여러 수(首)로 이루어진 것도 있어, 수로따진다면 500수가 훨씬 넘는다. 그의 시 331편을 처음으로 번역하고 내용별로 분류해 보았다. 그러나 시의 종합성과 복합성 때문에 하나의 분류 기준으로 나누기가 어려웠다. 정기 시를 제재·소재에 따라 편의상 대별해 보면기행시(紀行詩)가 149편, 교유시가 233편, 자연시가 38편, 영사시(詠史詩) 등기타가 총 25편이다.
정기는 위정척사 사상을 지녀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저항하려 하였으며 광복 후의 혼란과 6·25 전쟁을 겪었다. 그의 시에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 흔적이나 난세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일본 제국주의를 직설적으로비판한 작품이나 시대나 역사를 본격적으로 노래한 시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행시, 교유시 등에 역사적 사실과 연관지어 곤고한 현실을 노래한 시들이 상당 수 있었다.
정기는 여행과 자연을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시편을 많이 남겼다. 중국에세 번 들어갔다 오면서 역사 유적과 명승지 등에서 느끼는 감회를 시로 읊었다. 특히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관련된 인물이나 사적지, 고려의 유적지에서 당대 망국의 현실을 중첩시켜 노래한 것이 여럿이다.
경상도, 전라도는 물론 전국을 유람하면서 누정이나 산사에 들러 지은 시들도 상당하다. 유학자이지만 불교를 이단시하여 배척하지 않고 호의를 갖고 회통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친구·제자들과 산행하면서 지은 시에서는 소탈하고 따뜻한 인간적 풍모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동문수학한 친구, 자신이 아끼는 효당 김문옥, 고당 김규태 등 제자들과 빈번하게 교유하며, 혹 눈에 거슬리는 언행을 하는 제자가 있으면 따끔하게 타이르고 권계하기도 하였다. 지인들의 죽음이나 이별을 당하여서는 추모와 석별의 정을 곡진하게 노래하였다. 비둘기나 복숭아를 보내준 지인, 헤어진 후 편지를 보내준 사람이나, 늙고 병든 자기를 불원천리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감사의 정을아낌없이 드러내었다. 생신이나 회갑을 맞은 분들에게는 진심으로 축하를보내며 건강하게 장수할 것을 빌었다.
정기의 시는 형식적 기교나 멋보다 내용의 표현을 더 중시하였고, 오언시보다 칠언시가 많았다. 교유시와 여행시는 물론 고요하고 깨끗한 자연에 대한 노래, 생활과 밀착(密着)된 시도 적지 않았다. 그의 시를 통해 정기가 49 세에 지리산 아래 구례 토지면 오미리로 이주하여 강학을 하며, 자연을 유람하고 지인들과 교유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산 궤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