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염상섭의 작품에 나타나는 근대적 법제도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호명되는 법과 그에 따른 법의식을 연구하는데 있다.
염상섭 작품이 근대법과 깊은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염상섭 연구는 법의 관점에서 염상섭의 작품을 보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법적인 서사를 무시하고 방법론적인 한정을 짓는 것과 같으며 염상섭의 작품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기존의 염상섭 작품을 해석하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법적인 서사가 의미하는 바를 분석하여 염상섭이 추구하는 작품세계의 근원에 보다 더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흔히 법이 작품의 소재로 차용될 경우 법은 정의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염상섭은 법적 정의 구현을 위한 준법적인 노력을 넘어서는 법을 구성하는 본질이 무엇이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근대적 법제도의 규제와 통제 안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율성을 획득하는지를 일상적인 생활 안에서 보여주고 있다.
문학에서 법을 연구할 때, 단순히 재판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법률조항의 해석적 측면을 바탕으로 법을 논한다면 법적인 서사가 제기하는 유의미한 지점을 놓칠 수 있다. 문학에서 재현된 법정 장면이나 법을 호명하는 것은 문학적 상상력에 의한 것이지 실정법 자체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법이 어떻게 적용되느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정법상의 문제를 따지기 보다는 작가가 법적서사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염상섭은 작품 속에 법적 서사를 반복적으로 제시하면서 근대적인 법제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법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법의 권위를 구성하는 것은 인간의 개인적인 정념을 통제하기 위한 규율주체로서의 법의 강제성뿐만 아니라 개인적 정념을 위해 법에 반하는 불법적인 행위 역시 법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즉 법이 지녔다고 상정되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권위에는 비법적이고 불법적인 행위가 내재되어 있는데 이것은 진짜 결혼식이 가짜 결혼을 담지하고 있으며 적법한 호적이 불법적인 출생을 감추고 있다는 것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