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소설집 ≪그 길 끝에 다시≫의 국내여행소설을 예로 들어, 최근 한국작가들이 국내의 로컬과 장소 정체성을 구성하고 정위시키는 층위와 방식을 살피고자 한다. 여행소설들의 인물은 모두 서울에서 출발하며 목적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다. 목적지에 대한 기지감은 출발지ㆍ정주지와 자아 정체성에 대한 기지감과 직결된다. 하지만 여행이 시작되면서 인물들은 목적지의 절대적 타자성ㆍ이질성 즉 망각의 돌출을 목격한다. 목적지에 대한 개인적 기지감과 망각은 목적지와 출발지를 구획하고 이 공간들의 정체성을 국가경계 내에서 유기적으로 조직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공간구조가 야기한 효과다. 목적지는, 근대 국민국가의 유기체적 공간구조에 의해 관리ㆍ규율될 수 있는 타자성ㆍ이질성을 장소 정체성으로 획득한 공간으로 상상ㆍ구성되어 기억된다. 하지만 목적지의 절대적 타자성은 근대 국민국가의 유기체적ㆍ규범적 공간구조 자체가 불안과 공포를 내장한 취약한 구조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이는 이 소설집의 여행소설에서 발견되는 멜랑콜리의 이중적 성격과 직결된다. 멜랑콜리는 억압적인 현실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비판적 감정을 이면에 있다. 동시에 소설들은 결핍을 상실로 전환함으로써, 국민국가의 공간구조를 선험적인 것으로 승인한다. ≪그 길 끝에 다시≫의 국내여행소설은, 개인의 기억과 망각, 그리고 절대적 타자성의 배제나 관리 가능한 것으로의 수정 혹은 상실된 것으로의 사전 경험 등은 근대 국민국가의 유기체적ㆍ위계적 공간구조에 기인한 것임을 드러내면서 이 구조에 의한 내부 식민지성을 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