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어린 육백리』는 휴전선이 수려한 자연경관을 유지하는 국토의 한자락이지만, 어느 곳이나 핏 자국이 어려있는 고난의 경험을 간직한 길임을 답사하면서 확인하는 서사이다. 이 수난이 민족의 수난이기에 핏 자국은 거대한 희생을 치룬 증거가 되고, 휴전선 육백리를 걸어가면서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자유진영을 중심으로 ‘국가’의 관념을 재배치한다. 휴전선을 통해 국경을 상상하는 피 어린 육백리의 서사는 휴전선과 이북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반공전선을 중심으로 구획되는 자유진영, 자유세계로 국가의 영역을 확장하는 국경인식을 구성한다. 휴전선을 통해 국가를 상상하는 것은 적대감을 통해 위기를 고착화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냉전의 감각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은상의 기행문은 휴전선에서 벌어진 침략의 역사적 사건들을 겹쳐서 기억함으로써 고려와 조선과 중국의 경험들이 어우러져 적과 아를 구분하고, 그 경험 속에서 결코 타협하거나 공존할 수 없었던 적들의 모습을 북한과 겹쳐서 해석해낸다. 이은상 기행문의 역사적 기억은 휴전선 저편의 적이 어떤 대상인지를 비유적으로 상상하게 하며,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대상임을 각성하게 한다. 또 북진론을 주장했던 맥아더의 전쟁론이 가장 애국적이며 필요한 정책임을 알려주며, 맥아더의 전술이 혈맹으로서 미국의 입장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이은상의 기행문은 단순히 휴전선 너머의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자유진영을 구축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기행문의 서정적인 한시와 침략전쟁에 대한 비유적 동일시는 한국전쟁의 성격을 북한 괴뢰의 도발로 해석하고, 맥아더의 북진론 만이 혈맹으로서 자유진영의 전술이어야 한다는 전쟁인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