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1920년대 동인지문단의 붕괴 과정이 사회문화적 맥락에서도 해명될 필요가 있다는 곳에서 출발한다. 3.1운동 직후 문학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진행된 개조운동의 중요한 일 부문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문학은 새로운 사상과 감정으로 민족의 신문화를 건설해야 할 중요한 사명을 띤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1920년대 동인지문단의 붕괴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살펴보기 위해 이 글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 시기 ‘感情’이 문학(특히 시)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동인지문단의 시가 ‘감정과잉’의 시로 평가된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연애’를 둘러싼 다양한 감정들을 주로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연애’를 둘러싼 다양한 감정들은 근대적인 개인의 개성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곧바로 건강하고 고상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었다. 이광수나 서유준의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듯, 그것은 ‘ᄯᅦ카단적’(퇴폐적) 감정으로 규정되면서 민족의 새로운 문화를 건설해야 할 청년들의 심신을 좀먹는 ‘병균’이나 ‘마물(魔物)’로 비난받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사회적 비판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문단 내외의 비판은 특히 당대 청년들에게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었던 소위 신경쇠약이라는 ‘현대병’과 연관되면서, 과도한 감정의 적절한 통제라는 사회문화적 요구로 이어지고 있었다.
신경쇠약의 문제는 1920년대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 “現代人의 全般이 神經衰弱의 徵候가 잇다”는 진단이 내려지고, ‘불안’과 ‘공포’를 동반한 신경쇠약이 “現代의 資本主義”라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이 나타나는 것은 1920년대 중반 경에 들어서였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조선청년의 대부분이 신경쇠약에 걸린 것은 사세부득이의 일”이며, 따라서 신경쇠약은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심각한 “一大 社會問題로 思惟”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1920년대 중반 경부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신경쇠약의 문제는 어떻게 감정의 절제와 통제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기 신경쇠약의 문제는 조선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진단되지만, 유독 학생과 청년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청년들이 앓고 있는 신경쇠약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성적인 문제, 즉 연애의 문제였다. 청년의 연애 문제는 동정피로, 곧 신경쇠약을 야기할 수 있었고, 그것은 민족의 미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인지문단의 상징과도 같은 연애를 둘러싼 감정이 청소년 혹은 청년들의 과도한 민감성과 연관되면서 증상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신경쇠약담론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적절하게 통제된 감정이 통제되지 않은 과도한 감정보다 고상한 감정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