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에서 글쓰기는 낯선 연구주제이다. 이는 연구자가 글쓰기를 자신의 존재 물음을 통해 앎을 드러내려는 시도로서 보다는 연구 성과를 표현하는 단순한 전략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과학 연구에서 글쓰기는 각종 학술지들이 요구하는 지식의 생산과 소비에서 물류화 과정의 도구로 전락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학계 역시 저자의 창의성과 개성을 존중하기 보다는 글쓰기를 동류(同類) 집단의 프로토콜로 고착시킨 면이 있다. 그러나 글쓰기는 연구자의 삶을 성찰하고 체험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는 유용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상학적 접근과 공통적인 속성을 갖는다. 전통적인 국제정치 연구에서는 이러한 태도로 다가서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즉, 국제정치학에서는 인간의 목소리가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정치학 역시 자료의 취합과 그러한 자료를 이해하고 앎의 지평을 확대하는데 본질적 특성을 두고 있으며, 이런 전제에서라면 현상학적인 접근이 용인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현상학적 태도로 각종의 자료를 해석하는 것은 국제정치라는 권력 작용을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일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표현의 한계와 정합성에 대한 우려로 의심받았던 질적 연구를 보다 심화시키는데 컴퓨터 프로그램이 이바지 하고 있다. 이는 연구의 효율성 뿐 아니라, 현상학적 연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인 수많은 체험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노력에 큰 기여를 한다. 현상학적 글쓰기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앎을 연구 과정에 투영하는 작업일 뿐 아니라, 기술적 보조 장치에 의지하기에 적합한 접근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