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The Korean Repository의 성격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이 잡지의 학술 자료적 가치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The Korean Repository는 1892년부터 1898년까지 국내에서 발간된 최초의 영문잡지로, 첫째, 이 잡지의 집필진은 대부분이 서양인으로서 그들의 객관적 시선으로 당대 한국을 관찰한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논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실제로 한국에서 생활을 하며 한국인과 교류하고 한국을 체험했다는 점에서도 이 잡지 이전의 필자들과는 확연하게 구별될 수 있다. 둘째, 이 잡지의 집필진들은 근대적 지식인으로서 자신들이 내재화한 근대적 사유의 틀에 따라 당대 한국 사회를 정치, 경제, 신분, 문학, 풍습, 언어, 기행 등의 각 분야로 나누어 한국에 관한 지식을 구성해 나갔기에, 이 잡지는 그야말로 한국학의 보고(寶庫)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남긴 기록 중 한국어의 계통이나 기원에 관한 것, 또는 영역시조와 관련된 것은 오늘날의 연구자들에게도 주목받고 있다. 셋째, 이 잡지에 수록된 내용들은 그 자체로 당대 해외 각국의 독자들에게 읽히고 인용되기도 하고, 집필진들에 의해 단행본으로 간행되면서 독자층을 넓혀 나갔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해외 한국학 담론을 구성해 나갔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The Korean Repository는 본격적인 해외 한국학 담론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본 잡지의 집필진은 대부분 상당 기간을 한국에 거주하면서 교육, 언론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국내 근대적 지식인을 양성하고 이들과 지적, 종교적, 문화적 교류를 이어갔다. 즉 이들은 국내 지식인과 인적 네트워크를 맺으면서 국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주시경의 한글 연구나, 『독립신문』의 간행, 『독립신문』에서 시도한 띄어쓰기 표기법 등에서 The Korean Repository의 영향력이 감지된다. 마지막으로 The Korean Repository에는 번역 용례의 박람회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번역어들이 담겨 있다. 집필진은 당대 한국 사회를 좀 더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그리고 낯선 한국 문화를 서양인에게 보다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최선의 번역어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였다. 이 잡지에서 발견되는 용례들은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에서, 또한 오늘날 우리 시대의 번역을 수행하는 데에도 긴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발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The Korean Repository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진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