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형법학에서 법익(개념)은 근래에 이르기까지 매우 큰 기대를 받아왔다. 체계초월적⋅체계비판적 법익을 통해서 실정형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법익개념을 이용할 때에만 비로소 형법의 정당화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법익개념만으로는 법익의 범위를 가장 좁게 설정하는 인격적 법익론에서부터 법익의 범위를 훨씬 더 유연하게 바라보는 입장, 실정법을 해설하는 데에 법익의 역할을 국한시키는 견해, 법익개념을 포기하고 법체계 그 자체의 보호를 목적으로 보고 있는 시각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규범정당화의 대화를 이끌고 갈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법익의 뜻이 아니라, 무엇이 정당화될 수 있는 법률의 내용인가의 문제이며,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른 (영미법) 원칙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파인버그의 ‘해악원칙’과 이를 보충하는 ‘불쾌원칙’이 기존의 법익의 역할을 대체하거나 그 맹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형법학에서 이질적으로 생각되었던 ‘후견주의’나 ‘도덕주의’의 사고를 통해 기존 법익개념으로 근거지워질 수 없는 실정법규정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