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시에는 시인 자신의 정감을 표현한 작품이 많지만, 때로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자신의 역사의식이나 문명의식을 시로 표출하기도 하였다. 특히 우리 역사에서 고려 후기와 조선 후기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배계층에 속했던 인물들의 주체적인 결단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고려 후기에 진화와 정몽주의 시에서 문명에 대한 주체의식이 뚜렷함을 보여주었고, 조선 후기에는 역관 신분이었던 이언진의 시와 박수의 사상에서 문명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진화는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면서 문명의 주체가 고려임을 나타내었고, 정몽주는 한시를 통하여 중화적(中華的) 세계 질서 속에 있는 고려 민족의 자부심을 드러내었다. 즉, 고려 후기에 국제관계가 중국 명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 질서를 인정하고, 그 질서 속에서 문화적 동질성을 확보하고 살아가는 자부심을 시로 표현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역관이었던 이언진의 시에서 자신의 신분과 사상에 대한 깊은 성찰이 나타나있다. 이언진의 시집에는 시인 자신이 겪은 고통과 분노의 언어로 채워져 있으면서, 유교 국가 너머 다양한 사상이 인정되고, 신분과 혈통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계를 꿈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박수는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진정한 의미를 논하면서 “주나라가 이룬 제도와 문화를 갖추어 예를 지키고 인륜을 유지하여야 중화”라 하였다. 이러한 선인들의 시와 사상을 통해 볼 수 있는 역사의식과 문명의식은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자리를 잡아, 앞으로 보다 바람직한 역사를 이룩해 나가고 새로운 문명을 창출해 가는 원동력이 되리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