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의 목적은 이병기가 시조혁신론에서 주창한 격조의 변화가 이호우와 김상옥 시조에서는 어떻게 변모했는가를 살피는 가운데 시조 정체성을 찾는 데 있다. 가람 이병기는 격조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자수의 융통성, 자유로운 행갈이 등을 주장했으나 격조 변화를 위한 명료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독자 제씨에게 더 많은 변화의 여지를 남겼기 때문에 오늘날 시조의 정체성은 불분명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이 된 시점부터 변모 과정을 진단해 가다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호우와 김상옥은 문장지를 통해 이병기의 추천을 받아 문단활동을 시작했으므로 이병기의 시조혁신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두 사람은 영향받은 바는 동일하나 그 형태는 같지 않다. 이호우는 격조를 살리고 국민시로서의 면모를 다지기 위해 시조 자수에 융통성을 주었다. 이에 비해 김상옥은 두 번째 출간한 시조집 『삼행시육십오편』에서 삼행시라 하여 구, 음보, 음수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삼행만 살려놓는 파격적 시조를 창작했다. 이는 의미에 치중하다 보니 시조 정형을 간과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김상옥은 이병기의 시조혁신론 제 1항 이미지에 영향 받은 바가 컸다. 그는 시는 물론 시조, 동시 등에서 조형적인 이미지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이병기의 시조혁신론에 이어 이호우의 ‘국민시’, 김상옥의 ‘조형시’를 살펴본 결과 오늘날 현대시조가 나아갈 길은 자수의 가감에 어느 정도 융통성을 주는 격조론을 추구하되 자수의 완전한 파괴로 나아가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은 일찍이 이병기나 이호우가 우려했던 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수의 융통성을 둔 격조를 살리면서 특정한 어미 사용이나, 음ㆍ어절의 반복을 살리는 병치 기법, 이미지 기법 등으로 리듬과 의미가 조화를 이루는 시조 미학을 살려가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