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의 대학은 교양을 연구하고 전수하여 국민 국가의 시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지만, 오늘날의 대학은 국가의 통제를 뛰어넘은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인하여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학의 변화는 대학의 위치와 방향성에 대하여 논의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이 요구된다. 현대 대학을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하는 담론들 중 이데올로기의 혐의가 있는 수월성 개념을 중심으로 대학 담론의 관점을 확장시킨 레딩스의 『폐허의 대학』은 중요한 텍스트로 간주될 만하다. 레딩스는 경제적 지구화로 인한 자본 재생산의 기반인 국민국가의 쇠퇴는 대학의 지향점을 변경하고 대학을 “초국적인 관료적 기업”으로 변모시켰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전통적인 인문학 또는 교양(culture)은 대학의 중심에서 벗어나 ‘수월성’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레딩스에 따르면 수월성 개념이 사실상 텅 빈 개념으로서 비(非)지시적 성격을 가졌기에 대학이 이데올로기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자본주의에 무의식적으로 순응하면서 대학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예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레딩스는 경제적 논리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수월성 대학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하지 못한다. 더욱이 레딩스의 대학 담론의 치명적인 약점은 대학이 교육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관련된 수월성 담론을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폐허의 대학에 머물면서 진정한 사유(Thought)를 가능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레딩스의 제안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