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해방 직후 원산에서 간행된 시집 『응향』과 관련된 논란을 중심으로 북한 정권 수립기의 검열 문제를 분석한 것이다. 북한의 경우 공식적인 국가 기구에 의한 검열의 흔적을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에서의 검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이 제시한 상상력이 전개의 방향과 틀과 그로부터의 일탈에 대한 유형 무형의 제재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북한문학의 상상력이 전개되어야 할 방향은 ‘인민을 위한 문학’이란 표어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무엇보다 문학은 인민들을 ‘새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해야 했다. 이를 위해 북한문학은 인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따라 배울 수 있는 전범을 그려야 했다. ‘긍정적 주인공’과 그들의 영웅적 의지와 열정을 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시집 『응향』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이 인민을 위한 문학이라는 큰 방향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응향』을 비판하는 데 동원된 다양한 수식어, 즉 세기말적·퇴폐적·감상적·개인주의적이라는 수식어들은 실상 그런 경향들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인민들의 의지와 열정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표현 형식과 언어에 있어 인민들의 이해하기 쉽지 않은 표현의 문제 역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표현들의 배후에 있는 사상성, 계급성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이 보인다. 이 점은 특히 구상의 「여명도」라는 작품에 대한 북한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구상이 소개한 대로라면 이 작품은 해방 이후의 북한 혁명과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동적인 작품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한 비판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한편으로 이 시기 북한 검열이 생각과는 달리 느슨한 것이었을 가능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구상이 소개한 「여명도」가 『응향』에 실렸던 것과는 달리 수정, 개작된 것일 가능성을 함께 시사한다.
『응향』 사건 북한문학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다시 확인하는 동시에 금지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의 언어와 표현형식에 대한 날선 비판은 이후 북한문학(시)의 발전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인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산문적 진술로 이루어진 시, 그리고 일체 오독의 가능성이 없는 시가 그 방향의 내용이다. 그리고 창작과정에서의 자기검열, 그리고 실질적인 검열 기구 역할을 담당한 합평회와 출판 전의 윤독(輪讀) 등을 거치면서 북한 시는 점차 당이 요구하는 내용과 표현형식에 부합하는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응향』은 문학(시)에서의 분단을 확정하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