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기념사업이 전개되고 있는 일본의 가고시마라는 지역 사회에 주목하면서, “사쓰마(薩摩)―메이지유신의 주역―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전설”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하나의 정형화된 기억이 어떤 다른 기억들을 억압하고, 망각시켜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계보학적으로 추적한 논문이다. 일본 근대사에서 가고시마는 메이지유신을 만들어낸 본고장이면서 동시에, 유신 이후 최대의 내전으로 일컬어지는 세이난전쟁을 일으킨 반역향이라는 모순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7천여 명에 이르는 사쓰마군 전몰자들은 ‘관군전몰자’만을 제사 지내는 야스쿠니신사의 제신(祭神)에서 완전히 배제되었고, 지역 초혼사인 호국신사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들 사쓰마군 전몰자의 위령공간인 ‘난슈묘지(南洲墓地)’는 일본의 다른 어떤 기념공간보다도 “귀기서린 지역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반면, 가고시마가 배출한 메이지유신의 영웅이자 세이난전쟁의 사쓰마군 최고지휘관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반역의 수괴’ 이미지를 벗고, 지역 사회의 위인이자, 일본 근대의 선각자로 자리매김된다. 40년의 간격을 두고 각각 도쿄와 가고시마에 세워진 사이고 동상은 충성과 반역이라는 모순을 체현하고 있는 한 인물이 국가의 영웅으로 순치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반역과 독립의 기풍을 중시했던 메이지라는 시대정신이 맹목적인 천황제적 충성으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동시에 이는 세이난전쟁의 패배와 사이고의 자결 이후 전국적으로 형성되었던 ‘사이고 전설’이 내포하던 사이고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들이 이후 대륙침략의 이데올로그인 아시아주의의 선각자로, 그리고 현재까지 가고시마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지역 사회의 ‘위인’으로 일원화되는 과정과도 겹쳐진다. 본고는 사이고라는 한 인물의 위상에 대한 이러한 변천과정을 지역 사회의 기억–실천(memory-practice) 과정을 통해 추적하면서, 근대 일본사에서 반역의 정신의 소멸이 갖는 정신사적 의미까지 아울러 성찰하고자 했다.